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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s pictureMike S Chi

욥기 1장 : 자녀의 죽음이 고통스런 이유

욥기 1장 마지막절 말씀에서 욥이 범죄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모든 시련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욥의 행실이 하나님을 떠난 방탕하고 허망한 자와 같이 행하지 않았다는 것 같다. 죽음이 마귀의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단절” 이라는 고통을 가져다주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사회적인 존재이다. 서로 소통하고 교통해야하며 이런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우리의 존재이유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고 그 것을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과 항상 소통하는 관계에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단절됨을 느끼는 순간 그리고 내가 믿어왔던 하나님이 나와 더이상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의 감정은 나락으로 빠지게 되고 그 이후에는 하나님을 부정하며 세상에 빠지는 오류를 충분히 범할 수 있다.


인기가 많았던 여배우 정다빈씨는 자살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나 자신도 정다빈씨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적잖이 놀랐다. 정다빈씨가 실제로 자살을 한 것인지 자살을 했다면 왜 했는지 100%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이런 동기를 알 수 없는 죽음일 수록, 갑자기 찾아온 죽음일 수록 부모님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내 사랑하는 자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도대체 수긍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은 그 죽음이 가쉽거리가 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듯 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에 나온 정다빈씨의 어머니의 모습은 정말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정다빈씨의 어머니가 영매를 통하여 죽은 정다빈씨와 소통을 시도한 적이 있었고 그것이 방송으로 나오기도 했다. 나중에 정다빈씨 어머니는 정다빈씨를 다른 죽은 남성과 영혼 결혼식을 올려주고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크리스천으로서 난 이런 방법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 어머니의 마음은 100% 이해를 하고도 남는다. 내가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면 유나의 죽음에 대한 나와 내 아내의 행동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단절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그 사람이 잘 있는지 알고싶은데 확인할 길이 없고 목소리도 듣고 손도 잡아보고 싶은데 그렇게 할 방법이 없으면 사람들이 미쳐나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때로는 그 고통에 자살을 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도 죽음에 이르렀을때 하나님께 왜 나를 버리셨냐며 하나님과의 소통의 단절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셨다. 항상 아버지와 소통을 하던 예수님께서는 이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으셨던 것일까? 성경은 이런 부분까지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대로 쓰고있다.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가복음 15장33~34(개역개정)


그런데 자녀의 죽음이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 중 하나인 이유는 아이를 보지 못하는 단절이라는 고통뿐 아니라 죽은 자식을 내가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유나가 살아있을 때 Interstellar 라는 영화를 봤었다. 이 영화에서는 멸망해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하여 Cooper 라는 우주비행사가 우주탐사를 다녀오게 되는데 이 주인공이 임무를 마치고 지구에 귀환을 했을때 지구와 우주와의 시간차이에 의하여 자신의 귀환을 기다리던 어린 딸은 이미 나이가 들어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때 그 딸이 자기 아버지에게 "No parent should have to watch their own child die"라고 하며 병실에서 나가라고 한다. 이 대사가 유나가 천국에 간 후에 자꾸 내 머리에 생각이 난다. 왜냐면 그 말을 유나의 죽음으로 인하여 내가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자녀를 잃은 부모의 고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는 아무래도 Will Smith 가 주연한 영화 Collateral Beauty 가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보는 내내 Will Smith 가 자식을 잃은 공허함과 죄의식을 어떻게 그렇게 잘 표현하는지... 전반적인 영화의 평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나에게는 별 5개 짜리 영화가 되고말았다.


나는 아직도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1978년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친할머니께서 당신의 아들이며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의 배게맡에서 찾은 아버지의 몇가닥 머리카락을 손에 쥐시고 이게 너희 아버지 머리다...라고 하시며 멍하니 앉아계시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할머니의 슬픔의 크기를 알 수 없었다. 내가 더 슬프다고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할머니의 슬픔의 크기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당시의 나의 슬픔보다 더 크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욥기로 돌아가서, 욥에게 재앙이 일어나는 내용을 읽어보면 이 재앙들이 아주 치밀하게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물질과 종을 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자식을 친다. 그것도 한두명이 아니라 10명 모두를 친다. 사탄은 이렇게 강도를 점점 높이면서 욥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사탄이 누구인가? 욥을 괴롭힐 기회를 잡은 사탄은 하나의 기회라도 헛되이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자식을 죽이는 큰 고통을 줌으로 자기가 욥에게 줄 수 있는 다른 작은 (상대적으로) 고통들이 자식이 죽는 큰 고통에 의미없이 묻어가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악을 다하는 사탄으로는 작은 고통부터 시작해서 욥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서서히 느끼게 하다가 마지막에는 10명이나 되는 자식을 모두 죽이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잔인함으로 욥을 고통받게 하고 있는것이다. 우리가 정말 별 생각없이 욥기를 읽을 수 있겠지만 자식을 잃어본 부모로서 사탄이 욥에게 행한 일은 정말 치를 떨게 만든다.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미 욥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아무리 마귀가 욥을 흔들어도 욥이 범죄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다. 여기서 마귀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마귀가 벌이고 있는 하나님과의 싸움은 마귀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인 것이다. 그 과정에 있어서 마귀가 우리들을 괴롭히고 스스로가 승리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있을 뿐이지 역시 그 싸움의 끝은 하나님의 승리인 것이다. 우리가 어떤 고난 가운데 있더라도 그 고난의 끝에 확실히 회복되어지는 승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도 조금은 쉽게 싸워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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