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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s pictureMike S Chi

욥기 2장 : 사탄의 집요함과 욥의 아내

누군가 '왜 욥에게 이런 고난이 왔을까?' 라고 묻는다면 하나님이 쓸데없이 욥에 대한 자랑을 하셔서 그런것 아니냐! 라고 대답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마 농담조로 나도 그렇게 이야기를 할 것 같기도 하다. 자식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대부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느날 자식을 자랑하고 집에 들어오면 자식이 꼭 말을 안듣는 현상이 벌어지고 집에서 한바탕 난리가 난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가서 자식자랑을 하는 것이 좀 불안하다. 아마 욥기를 읽은 여러 사람들이 '하나님, 어디 가서 저 자랑하지 마세요' 라고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욥과 같은 믿음을 가지지 못했으므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기 1:8 (개역개정)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욥기 2:3 (개역개정)



그런데 나는 욥기 2장3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까닭없이 욥을 치게 하셨다”고 하신 부분에서 조금 멈칫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생각해봤다. 아마 이 말씀은 “네가 나를 격동하여 (나로 하여금) 까닭없이 (너가) 그를 치게 (허락을) 하였어도” 라고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본 시련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욥을 친 행동의 주체는 분명 마귀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단으로 하여금 한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들고 수천년에 걸쳐서 고난의 상징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것이다. 만약 욥이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죽이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만약 욥이 하나님을 저주하고 믿음을 버렸다면? 그렇다면 정말 하나님께서 공의의 하나님이신가?


여기서 한가지 우리가 알아야할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 하시다는 것이다. 즉, 이미 욥의 믿음의 크기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사탄이 욥에게 어떤 고통을 가져다 줄 지에 대해서도 알고 계셨을 것이고 욥이 그 시련을 충분히 감내해 낼 수 있음도 알고 계셨던 것이다. 바로 예수님의 탄생을 보면 똑같이 알 수 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는 두번째 아담인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시기 위한 준비를 하셨다. 이것을 아는 마귀는 예수님의 탄생을 막기위해 헤롯을 통하여 베들레헴과 그 지경에 있는 2살부터 그 아래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는 (마 2:16) 잔인하고 악독한 방법을 써가면서 까지 예수님의 탄생을 저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마귀의 계략은 성공하지 못하고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을 하시고 이집트로 피신을 가서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서 지내게 된다. 아무리 마귀가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려고 해도 마귀의 계획은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긴 싸움을 마귀는 진 싸움을 싸우고 있을 뿐이다.


욥기 2장3절에서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다시 욥의 순전함에 대해서 자랑을 하시자 마귀는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소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욥기 2:4~5 (개역개정)

라며 욥이 육체의 고통을 겪으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정말 포기를 모르는 악의 결정체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을 사단에게 붙이신다. 하지만 그의 목숨에는 손을 대지 못하게 하신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욥기 2:6 (개역개정)

한가지 중요한 것은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이는 마귀가 욥의 몸에는 손을 댈 수 없었다. 우리의 시험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가 있다는 것, 마귀가 임의로 그 시험과 고난의 영역을 넓힐 수 없다는 것에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 때문에 사탄은 욥의 생명을 건드릴 수 없었다. 하지만 사탄도 굳이 자신이 욥의 목숨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탄이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 사탄이 욥의 자녀들과 종들을 죽인 것과 같이 외부적인 원인으로 욥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잔인한 방법은 욥이 극심한 고통속에서 살면서 오히려 죽음이 더 나은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죽게끔 하는 것이다. 마귀는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욥이 육체의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욕하지 않고 순전한 삶을 살다가 행여 어떠한 사고로 아니면 악한 누군가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면 욥은 그대로 의인으로 남을 것이며 이건 마귀가 원하는 결말이 아닌것이다.


사탄이 원하는 가장 멋있는 결론은 욥이 스스로 하나님을 저주하면서 목숨을 끊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승리가 되겠는가? 사탄은 필시 욥이 고통중에 자살을 할 것이라 확신했으며 육체의 고통과 함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주입시킨다. 그 첫번째로 나오는 모습이 욥의 아내를 통해 자신이 사단 자신이 원하는것을 욥에게 그대로 이야기를 하게 하고있는 것이다.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2장9절 (개역개정)

이 상황에서 욥이 기댈 사람은 아마 아내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10 자녀를 함께 낳고 양육했던 아내가, 그 죽은 10 자녀를 같이 추억할 수 있는 단 한사람인 자신의 아내가 자신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을 때는 정말 억장이 무너지고 이 세상에서 자신의 마지막 디딤돌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욥의 아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존재한다. 예전에는 무조건 욥의 아내를 악녀라고 치부하고 가뜩이나 힘든 욥을 더 힘들게 한 신앙없는 여자 정도로 치부했다면 요즘은 상당히 많은 의견이 욥의 아내를 동정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욥의 아내에 대한 설명이 많지 않다보니 실제로 욥의 아내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당시 사회에서 여자의 지위는 지금보다 훨씬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욥의 아내는 스스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 아내도 육체의 고통을 빼고는 욥과 동일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신이 욥이 당한 고통에서 육체의 고통만 뺀 나머지 동일한 고통을 받았을 때 그것을 얼마나 견딜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면 욥의 아내를 비난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욥의 아내의 믿음이 욥과 같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자녀를 잃는 고통을 겪기 전에는 욥의 아내에 대해서 동정적인 마음 보다는 비판적인 마음이 더 강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 욥의 아내는 악한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 묻는다면 자식 10명을 잃은 엄마가 반은 미쳐서 하는 말이라고 동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1장에서 욥의 정신적 고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탄이 재산에서 부터 시작해 마지막으로 그의 자식들을 죽이고 2장에서는 아내를 동원해 자살을 유도하는 모습은 악 그 자체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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