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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s pictureMike S Chi

욥기 4장 : 욥의 믿음은 행함의 믿음이었다.

욥기4장은 욥의 친구인 데만사람 엘리바스의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 그런데 잘 보면 욥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보라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욥기4장3절~4절 (개역개정)



데만사람 엘리바스의 말에 의하면 욥은 부자였지만 주변에 무관심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자신이 부자이기 때문에 편하게 아랫사람들을 시켜서 가난한 자들에게 먹을 것을 준다던지 다친 사람들을 돌봐주게 한다던지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가 직접 그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그가 한 일을 다시 보자. 여러 사람을 교훈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을 교훈했다는 것은 누군가 옳지 않은 일을 할때 그 일에 대해서 나서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교정하려 했다는 것이다.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다고 한다. 곤경에 처했거나 시험에 들어 실족하고 넘어져 가는 자들을 보면 단순히 음식과 물질을 주면서 도움을 준게 아니라 자신이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었던 것이다. 욥기 1장을 보면 욥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했다. 영어성경을 보면 greatest 라는 단어로 욥의 지위를 표현하고 있다.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개역개정)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개역한글)


그에게는 양이 칠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겨릿소가 오백 쌍, 암나귀가 오백 마리나 있었고 종들도 매우 많았다. 그는 동방에서 으뜸가는 사람이었다. (공동번역)


양이 칠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겨릿소가 오백 쌍, 암나귀가 오백 마리나 있고, 종도 아주 많이 있었다. 그는 동방에서 으뜸가는 부자였다 (새번역)


His substance also was seven thousand sheep, and three thousand camels, and five hundred yoke of oxen, and five hundred she asses, and a very great household; so that this man was the greatest of all the men of the east. (KJV)


그 많은 재산과 10명이나 되는 자녀를 가진 욥은 필시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였을 것이다. 욥에게는 금쪽같은 시간을 내서 아무 것도 없고 가난하고 곤난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해주느니 자신의 종들을 시켜서 물질을 내어주며 “내가 이 사람들을 돕고있다” 라고 하는 편이 훨씬 더 쉬웠을 것이다. 미디어에서도 보면 정치인들이나 큰 기업의 총수들이 시간을 내서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현장에서 같이 돕고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 많은 찬사를 보낸다. 그만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 수록 자신의 시간이 귀한 것이다. 물질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물질을 내어 놓으면서 까지 남을 돕는다면 거기에 진정성이 있다고 보듯이, 시간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 남을 돌본다면 거기에서 우리는 진정성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도 그 믿음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믿음과 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14~26 (개역개정)


야고보서 말씀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다는 말씀은 무엇인가? 성경이 서로 앞뒤가 안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이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듯이 하나님을 믿는 다면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그것이 그대로 보여져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 행동은 믿지 않는 자와 같이 한다면, 그것이 어찌 참된 믿음이겠는가?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사랑해서 많은 것들을 해주고 싶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행동에서 그 마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욥기 4장6절에서 욥의 친구인 데만사람 엘리바스도 욥에 대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바른 행위를 하는 사람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네 경외함이 네 자랑이 아니냐 네 소망이 네 온전한 길이 아니냐 (개역개정)

네 의뢰가 경외함에 있지 아니하냐 네 소망이 네 행위를 완전히 함에 있지 아니하냐 (개역한글)

Should not your piety be your confidence and your blameless ways your hope? (NIV)

Is not this thy fear, thy confidence, thy hope, and the uprightness of thy ways? (KJV)


즉, 누가 봐도 욥의 신앙은 행함이 있는 신앙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때는 욥의 고난에 치우친 나머지 욥이 평소에 그 신앙을 행동으로 보였던 행함이 있는 자였음에 대해서는 그다지 보게되지 않는 것 같다. 한가지 야고보서 말씀을 읽다가 느낀점을 추가하고 싶다. 우리가 행위를 통하여 긍휼을 행한다면 아래 말씀에 근거하여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로 부터 똑같은 긍휼을 기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야고보서 2:13 (개역개정)


욥은 이 원리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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