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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s pictureMike S Chi

욥기 4장 : 욥의 신앙은 두려움의 신앙이었나?

그런데 한가지 궁금증이 또 생겼다. 욥은 분명히 행동하는 신앙이이었다. 그런데 욥기 3장25절의 말씀을 보면 욥의 신앙은 또한 두려움의 신앙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욥기 3:25~26 (개역개정)



그렇다면 욥이 두려워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자녀들에게 나쁜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욥기 1장에서 욥이 어떤사람인지 설명해주는 말씀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욥기 1장은 욥이 자식이 10명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 재산이 많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나서 욥이 자식들이 범죄할까 자식들이 잔치를 벌인 다음 날에는 자식들을 불러서 성결하게 하고 자식의 수만큼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기 1:5 (개역개정)


자식들 입장에서야 잔치만 벌이면 자신들을 불러서 성결케하고 제사를 지내는 아버지가 좀 귀찮기도 했겠지만 그러면서 아버지가 자신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는지를 알게 되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욥은 일이 바쁘다고 자녀들을 내팽개치는 그런 부모가 아니라 진심으로 자식들을 아끼는 아버지였던 것 같다. 욥은 이렇게 자식들에게는 어느 정도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의 물질에 집착하는 모습은 보이지않는다. 아마 물질에 대해서는 자신이 하나님앞에 바로 서있는 한은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을 수 있고 우리의 생각보다는 물질 자체에 초연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을 수 있다.


그런데 자식에 대해서 걱정하고 집착하는 욥의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할까? 우리는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면서 믿는 자는 두려움이 없어야한다는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집착을 버리라는 말씀도 듣는다. 아마 아래 성경 구절들은 두려움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모두 한두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7 (개역개정)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4:18 (개역개정)


진정한 믿음을 가졌다면 두려움을 가지면 안된다는 말씀도 들었다. 하지만 살면서 그 누구도 걱정과 두려움에서 자유롭기는 힘들것이다. 아무리 좋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걱정과 두려움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자랑을 할만한 신앙을 가진 욥 조차도 삶에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산을 뺴앗기고, 자식이 죽고, 병이 들고 아내마저 등을 돌렸을때 욥은 평안도 없이 불안함만 있다고 고백을 하고 있다. 정말 완벽한 믿음을 가지고 두려움과 걱정없이 세상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불완전한 우리들은 아무래도 두려움과 걱정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는 없는가 보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가진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일까? 욥기를 다시 읽으면서 그 생각이 나는 완전히 바뀌었다.두려움과 신앙과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인간으로서 가지는 어느 정도의 두려움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항상 우리의 행위를 돌아보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실족하지 않도록 해주는 하나의 안전장치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이 자랑하시던 욥도 완벽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고 본다. 우리는 완벽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가지 개인적인 생각을 더 이야기한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욥과 같이 우리 자식들에 대해서는 조금 더 걱정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닌가 싶다. 나는 원래 걱정이 조금 많은 편이다. 유나를 다른 가족에가 맡기면서 아이만 혼자 보낸다는 것에 걱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아이만 보내달라고 요청을 미리 받았기에 아이를 잘 봐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지만 언제까지 걱정만 하며 믿음없이 그렇게 살 것인가 하며 나의 게으름을 정당화시키기도 했다. 설교 말씀을 들어보면 과감하게 모든것을 맡겼을때 기적이 일어나고 사고를 당할뻔한 상황에서도 사고를 피해가고 사고가 생겼어도 살아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이 부분은 나도 좀 씨름을 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내가 같이 있지 않았던 것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 부분은 내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마 내가 그날 유나를 혼자 보내지 않았다면 유나가 지금 내 곁에 있을까? 아니면 그 날이 유나에게 정해진 마지막 날이었을까? 다윗의 경우는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난 아이가 자신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죽게된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유나가 왜 죽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정답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정답을 알았을때 내가 감당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모르는게 오히려 좋지 않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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