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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s pictureMike S Chi

욥기 8장 (상) : 남의 자녀의 죽음은 그렇게 쉽게 생각해도 되는 것인가?

욥기8장의 시작과 더불어 수앗사람 빌닷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욥에게 좀 하기 힘든 말을 한다. 즉, 욥의 자녀들이 하나님앞에서 득죄를 했기때문에 자녀들의 죽음이 찾아왔다는것이다.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욥기 8장4절 (개역개정)


당시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엄청난 부를 가졌던 욥의 재물이 없어진것과 그와 함께 사라진 사회적 지위에 더 큰 관심을 보였을 것이며 자식들의 죽음은 그와 더불어 욥에게 닥친 불운 정도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대기업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그 가족의 재산에 관심이 있지만 정작 2005년에 세상을 떠난 이건희 회장의 딸 이윤형씨에 대해서 이제는 거의 잊고 있는 것만 봐도 그게 우리 사람들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빌닷은 왜 재물이 없어진 것이나 욥의 몸이 아픈 것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욥의 마음에 가장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자식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을까? 그 이유는 아마도 욥이 그의 친구들에게 보인 행동과 한 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성경에 자세히 나와있지는 않지만 욥의 세 친구들이 욥에게 와서 며칠을 지내는 동안 그들은 욥이 한탄하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의 상당부분이 아마 자식들의 죽음에 대한 심적인 고통이 아니었을까 싶다. 욥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자랑을 하실정도로 바른 사람이었다. 평생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안에서 축복을 받아온 욥이기에 그 고난 가운데에서도 아래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기1장 21~22절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 육체의 병을 얻어 몸까지 약해진 상태에서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욥은 극심한 고통에 빠지게 되고 그 고통의 중심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열 자녀의 죽음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자식 한명을 그리워하는 것 자체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인데 자신이 그토록 아끼고 하나님앞에서 바르게 키우고자 생일잔치 때 마다 번제까지 지냈주었던 열명의 자식들을 거두어 가신 하나님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생일때가 아닌 다른 때에도 내가 아이들을 불러다가 제사를 지냈어야 하는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무엇을 더 했어야 했을까? 내가 뭔가 간과한 것이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왜 그러셨을까? 내가 무엇을 못한것일까?' '부모로서 내가 책임을 다 한 것인가?'


아마 이런 생각들이 욥의 머리속에서 떠나지를 않았을 것이다. 욥기1장 : 욥은 어떤 사람이었나 포스트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욥은 물질보다는 자식들을 자식들 보다는 하나님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이것은 욥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런 욥이 수앗사람 빌닷의 이 이야기를 듣고는 그 마음이 어땠을까? 아마 때려서 죽이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부모라면 자식이 천벌을 받을 죄를 지어도 감싸고 싶은게 그 마음이다. 성경에 나와있지는 않지만 욥의 자녀들은 대체적으로 큰 문제가 없었던 평범한 자녀들이었을 것 같다. 평범하다는 의미는 그 시대상에 비추었을때 특별히 악하거나 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런 평범한 자녀들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이 욥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런 연유로 자녀들이 생일잔치를 한 이후에는 불러다가 번제를 지내주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자녀들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원한 미제로 남을뻔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의 어머니의 반응을 봐도 부모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처제를 성폭행하고 죽였다는 것만으로도 상상이 안되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인데 그 범죄 이외에 추가로 수많은 범죄가 밝혀진 상황에서도 오히려 아들을 감싸고 경찰을 원망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표 의원은 또 "(처제 살인사건은) 처가 가출을 했으니 홧김에 저지른 것"이라는 이춘재 모친 인터뷰에 대해서도 "아들에 대한 과보호 형태다. 무엇인가 감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춘재의 어머니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날벼락같다. 세상에 1, 2년도 아니고 지금 20년이 다 됐다. (아들이) 교도소 들어가서 이팔청춘 다 바쳤다"며 "그런데 그거를 진작 못 밝히고 왜 이제 와서 그러냐"라며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처제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꼭 말로만 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모든 정황으로 볼 때 굉장히 뉘우친다. 반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마을 사람들도 이춘재를 감싸는 말은 한다.


다른 주민은 "색시가 도망가고 없으니까 일시적인 감정으로 그런 사고를 저질렀을 것 같다"고 발언했다. 

이어 "괜히 가만히 있는 사람을 죽였겠나, 사람 한 명 죽인 건데 뭐 그렇게 대단해서 (교도소에서)안 내보내주느냐고 우리들 끼리는 이야기 한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사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사람 하나하나의 목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살인자의 지인들은 '사람 한 명 죽인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말을 한다. 이춘재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고있다는 듯이 이야기를 한다. 이춘재는 초등학교 여학생까지 성폭행을 하고 죽인 사람이다. 그런데 그 어머니와 지인들은 그를 감싼다. 왜 일까? 그 죽은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들에게는 자기 아들이 그리고 자기와 가까운 그 사람이 그냥 더 중요한 것이다.


이게 이상한 것이 아니다. 나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유나가 물에빠져 죽어가고 있을때 우리 유나를 돌봐줬던 부부가 우리 유나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수영장도 다니고 사람들과의 즐거운 모습들을 소시얼 미디어에 올리는 것을 알게됐다. 유나가 죽었을때 우리는 그 부부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았고 사과도 요구하지 않았다. 우리는 유나가 죽은 직 후 그 부부에게 유나를 위해서라도 신앙생활을 잘 해달라고 그리고 천국에 가서 유나를 만나서 미안하다고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나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최소한 죽은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줄 알았다.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부부는 자신들도 유나의 죽음으로 인해서 너무 힘들었다고 그래서 상담을 받았고 그 고통을 벗어나서 즐겁게 살기 위해서 소시얼 미디어에 유나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터 즐거운 모습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약속과는 다르게 주말에는 예배를 가지 않고 골프를 치며 지내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는 나는 정말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우리 앞에서 자신들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정말 우리만큼 힘들까? 그 사람들에게 너무나 실망이 커서 나는 요청을 했다. 그렇다면 유나의 죽음에 대해서, 그 날 유나를 돌봐주기로 하고 제대로 돌봐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사과를 해줄 수 있냐고. 하지만 나의 요청에 사과를 하지 않고 우리와 연락을 끊는 모습에 정말 인간들의 이기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나와 아내는 그 사람들에게 사과를 받지 못했지만 사과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진정한 사과가 아니고 자신들에게 어쩌다가 재수없게 닥친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필요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판단해주실 일이 아닌가 싶다. 너무나 화가 난 나의 아내가 그 부부에게 당신들의 자녀에게 우리 유나와 같은 일이 일어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 부부는 아내가 한 이 질문을 과장하여 내 아내가 자신들의 아들을 죽인다고 말했다고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사람들에게 유나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신의 자식은 그렇게 귀한 것이다. 언젠가는 이 부부가 철이 들고 자식을 잃은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본인들을 위해서라도 진정한 신앙을 가지기를 바란다.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남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 욥의 소식을 듣고 와서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같이 슬퍼한 빌닷도 욥의 고통에 동참을 하고자 했으나 욥의 마음의 찢어지는 듯한 고통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자식을 보낸 고통을 말이다. (다음 포스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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