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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Mike S Chi

욥기 7장 : K-Drama 마지막 남은 피난처까지 빼앗는 사단의 치밀함

유나의 죽음과 함께 내게 찾아온 변화 중 하나는 무력감이었다. 매순간 찾아오는 유나에 대한 그리움과 유나를 돌보지 못한 죄의식에 사로잡힌 나에게 세상의 어떠한 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런 무력감에 처음 몇개월 동안은 정말로 기본적인 일들 조차도 챙기기가 어려웠다. 매일매일이 슬픔과 무기력과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유나가 죽은지 한달하고 6일이 되던 2017년 8월6일 이었다. LA에서 얼바인으로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잠시 기운을 차리고 앞으로 해야할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기운을 잠시 차렸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차에서 내리고 집에 오는 순간 나의 마음은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삶의 동기를 찾고 하루를 살아갈 힘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내 마음이 어떻게 어디로 흘러가는지 난 죽을거 같은데 이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평온하게 돌아갈 수 있는지 모든게 혼란스러웠다. 유나에게 미안함 마음에 내 마음을 회복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회복이 될 것 같지도 않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나의 날은 배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없이 보내는구나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조각이 의복처럼 입혔고 내 가죽은 합창되었다가 터지는구나

내 생명이 한 호흡 같음을 생각하옵소소 나의 눈이 다시 복된 것을 보지 못하리이다

욥기 7장 6~8절 (개역개정)


비록 욥은 육체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욥을 더 괴롭혔던 것은 본인의 마음의 고통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이전 포스트에서 이야기했듯이 욥은 재물에 큰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곱은 셈에 밝고 물질에 대한 욕심과 성공에 대한 야망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욥은 야망이 있어서 부자가 되었다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성품과 행동으로 인하여 부의 축복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그의 부의 축적은 아브라함과도 비슷해 보인다. 그러므로 욥의 마음의 고통은 재물을 잃었기 때문에 생긴 고통은 아니었다고 본다. 살에 구더기와 흙조각이 의복처럼 입혀서도 아니었다. 하지만 죽은 열명의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이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옆에서 같이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아내에 대한 원망 그리고 하나님과의 소통의 단절에 대한 고통이 바로 욥을 더욱더 큰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던 것인것 같다.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이다.

욥기 7장11절 (개역개정)


욥은 육체의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않고있다. 욥은 자신의 마음의 아픔을 이야기 하며 자신의 영혼의 괴로움을 이야기한다. 욥은 이 세상에 살면서 많은 재물을 가진 동방에서 가장 큰 자였지만 자신의 지위와 재물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 큰 중점을 두고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육체의 극심한 고통보다는 하나님과의 무너진 관계에서 오는 고통과 자식을 잃은 아픔에서 오는 원망이 그 마음에 극심한 고통을 야기하고 있던 것이다. 하나님과의 단절을 느끼는 욥은 삶의 희망을 잃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죽음을 열망하고 있다.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스올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

욥기 7장8~10절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욥기 7장12절


이와 같이 하루하루가 고통인 욥에게 그나마 피난처는 아무 생각없이 잠들 수 있는 그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유나가 천국에 간지 이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도 몸이 지쳐서 잠이 드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꿈에서 유나를 볼지모른다는 기대감과 아무 생각없이 아무 고통없이 보낼 수 있는 그 몇시간이 내가 하루에서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또한 이렇게 자다가 내 숨이 끊기고 눈을 떴을때 천국에서 유나를 만나고 있다면 더이상 바랄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고통이 있을때 술이나 마약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예전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술취함과 마약이 나에게 꿈을 꾸게 한다면 내 마음의 고통을 잊을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 나로 하여금 전혀 다른 세상에 있도록 느끼게 한다면 나도 그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내가 술과 마약에 의존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은 꿈과 같이 지속되지 않는 것임을 알기 대문이다. 술이건, 마약이건 그 행복감을 느끼는건 잠시이고 그 후에 밀려오는 허무함이 더 고통스럼움을 내가 알기 떄문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잠을 자면서 위로를 받았단 나와는 달리 욥기 7장을 보면 욥은 그 최소한의 위로 마저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욥기 7장4절 (개역개정)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잠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욥기 7장13~15절 (개역개정)


필시 욥에게도 자는 시간이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 텐데 그 때에도 꿈과 이상으로 놀라 꺠는 일이 생겼다는 것은 그나마 하나 남은 피난처 마져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꿈과 이상이 과연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신것일까? 만약에 그것이 욥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고 욥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은 사단이 욥을 괴롭게 하기 위하여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여기서 욥이 “주께서” 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사단에 의한 것이지만 왜 자신이 고통을 받고 있는지 모르는 욥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재물의 빼앗김과 자식의 죽음과 육체의 고통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비록 욥은 이 고통의 원인을 몰라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고 죽기를 갈망하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상황이 이정도 까지 됐고 육체적으로도 극한의 고통에 처함 상황이라면 더구나 거할 곳도 없이 땅에 앉아 지내는 욥이 자신이 죽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영적인 사람이 욥이 하나님께서 왠지 모르게 자신의 생명을 잡고 계심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욥기 7장16~19절 (개역개정)


욥은 왠지 모르게 자신이 죽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고 그걸 알기에 어느 정도 원망어린 투정을 하나님께 해댄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욥기 7장을 읽으면서 극한의 고통을 겪는 욥의 마지막 희망인 잠조차도 빼앗아가는 사단의 치밀함과 그 가운데서도 내가 너를 놓지 않고 있을거라는 사인을 계속적으로 주시는 하나님과 그 가운데서 혼란스러워하는 욥의 모습이 꼭 한편의 K-Drama 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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