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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s pictureMike S Chi

우리는 정말 몸으로 부활을 하는건가?

지난 7월2일은 유나의 기일이었다. 유나가 떠난지 5년이 지났지만 그 아픔과 슬픔은 여전하다. 건강하고 사랑스런 아이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고통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한 충격 또한 너무나 컸다. 그렇지만 아이가 오랫동안 아프거나 해서 아이의 죽음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부모라고 해서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이런 상황에 대한 마음의 대비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날씨가 좋았다. 그래서 더 슬펐다. 아이를 그리워하면서 준비를 하는 것 만큼 큰 고통은 없는 것 같다.>


이번 유나의 기일에는 몇몇 참석해주신 분들과 함께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나눴다. 그리고 우리가 나중에 예수님과 함께 육으로 부활을 할 것에 대한 기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유나와 영으로도 만나지만 육으로도 다시 만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의 육신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일부 참석자들은 그 내용에 대해서 의아해했고 정말 내가 성경을 잘 이해하고 말씀을 나누는 것인지에 대해서 강력한 의문을 보였다.


사실 이 말씀을 나누기 전에 이런 반응이 나오리라고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다. 왜냐하면 나도 얼마전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매해 부활절 예배를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우리가 육신의 부활을 할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보고 읽고 들었음에도 우리 대다수는 이 육체의 부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무래도 우리는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을 듣고 이해하고 싶은 방향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기도 하고 어차피 죽어서 천국에 간다면 그것이 영적인 상태이던 아니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분들이 “예수님은 육체로 부활하신 거는 아는데 우리까지 왜 육체로 부활을 해야하는거야?”, “나는 육체로 우리가 부활한다는 건 생각도 안 해 봤어. 천국만 가면 되는 거 아니야? 그게 왜 필요하지?” 또는 “영이 부활하면 되는거지 뭘 굳이 불편하게 몸이 부활을 해. 당신 이단 아니야?”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이럴 때는 내 주장을 하기 보다는 성경말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하다. 그리고 나서도 듣는 사람들이 여전히 의심을 가지고 있다면 (누가복음 9장의 악한 영에 사로잡힌 소년의 아버지가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던 것 처럼) 존경받는 목사님들의 말씀을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우리처럼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몸을 만지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누가복음 24:39, 개역개정>


예수님께서 육으로 부활을 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여기까지는 받아들이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음 두가지 이야기를 하면 다들 답을 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는데 좀 어려움을 겪습니다. 첫번째는 왜 예수님께서 굳이 몸으로 부활을 하셨는지 그리고 두번째는 정말 우리도 몸으로 부활을 하게 되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사람들이라면 베드로전서에서 말하는 것 처럼 이 두가지에 대해서도 답을 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베드로전서 3장15절, 개역개정>


다음 포스트에서는 이 두가지에 대해서 더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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